한민족 정신문화의 상징물인 종, 굿사마리탄병원 정원에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자
코리안넷관리자
작성일
2021.04.23

최근 통신원은 병원에 입원한 지인을 방문하기 위해 굿사마리탄병원(Good Samaritan Hospital)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굿사마리탄병원에는 한국인 의사도 여럿 일을 하고 있고 위치상 한인타운과 가까워 한인들의 이용이 잦은 병원이다. 의사들의 사무실 겸 진료실이 있는 건물은 병원의 남쪽인 윌셔가(Wilshire Blvd.)에 가깝게 위치해있고 입원실은 건물 북쪽인 6가(6st St.)에 가까이 위치해있었다. 아직 모든 시민이 백신 접종을 마친 것은 아니기에 병원을 방문할 때엔 긴 줄을 서야 했고 1일 1회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만 방문할 수 있었다.

 

밖에서 쓰고 온 마스크는 입구에서 버리고 병원 측에서 마련한 덴탈 마스크 2장을 겹쳐 써야 했고 세정제로 손을 닦은 후, 체온을 재고 마지막 단계인 시큐리티 가드를 거쳐야 한다. 입원실 몇 호의 누구를 찾아온 것인지 꼼꼼한 체크를 하고 나면 드디어 면회를 하러 들어갈 수가 있다.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6피트 거리를 두고서 줄을 서 있는 방문객들의 손에는 장미꽃다발, 곰돌이 인형 등 환자들의 기분을 한 단계 높여줄 선물들이 들려 있었다.

 

긴 줄이 서서히 줄어들 무렵, 입원실 건물 오른쪽 녹지 지대에 들어서 있는 ‘우정과 평화의 종(Friendship & Peace Bell)’이 통신원의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돌과 철물로 된 시설에 매달려 있는 '우정과 평화의 종'은 언뜻 그 모양이 에밀레종과도 닮아 있었다. 종 아래에는 종의 공명이 더 잘 퍼지도록 반원구 모양으로 파인 대리석이 깔려 있다. 종은 그 무게를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철근 아래, 철 모양의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 머리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연꽃문양 종유의 단순화한 디자인은 애플 로고 디자이너도 울고 갈 만한 생략미가 가득하다. 에밀레종에서도 볼 수 있는 비천상은 그 신비하고도 우아한 자태가 아름답다. 종 가운데는 영어로 ‘우정과 평화의 종(Friendship & Peace Bell)’이라고 쓰여 있고 아래에는 ‘세브란스 병원과 굿사마리탄 병원(Severance Hospital and Good Samaritan Hospital)’이라고 새겨져 있다. 한국과 미국 LA에 있는 두 병원은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종 몸체에 동시에 이름을 올리게 됐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LA의 굿사마리탄 병원에 ‘우정과 평화의 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3년 8월 14일이었다. 이날 8.15 광복절 기념식과 함께 ‘우정과 평화의 종’ 제막식이 열렸던 것이다. ‘우정과 평화의 종’이 굿사마리탄 입원실 병동 옆에 설치된데는 굿사마리탄 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100년을 넘어선 우호적 관계가 그 이유였다. 지금은 대형 병원이지만 굿사마리탄 병원은 1885년만 하더라도 고작 9개의 병상으로 시작된 보잘 것 없는 병원이었다. 현재 이 병원의 병상 수는 408배로 늘었다.

 

굿사마리탄 병원은 유명인들의 임종을 지켜본 병원으로도 명성이 높다. 배우 진 할로우가 1937년 6월 7일, 26세의 나이에 신장병으로 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상원의원 로버트 F. 케네디는 앰배서더 호텔에서 총에 맞은 지 25시간 만인 1968년 6월 6일 아침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굿사마리탄 병원과 세브란스 병원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6,000마일 거리에 떨어져 있지만 두 병원 모두 세브란스 가문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설립되기 시작됐다. 세브란스의 지명도야 말할 것도 없고 굿사마리탄 병원은 20세기에 들어 한국의 이민 선구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의료기관이 되었다. 한인 커뮤니티가 성장하면서 굿사마리탄 병원에 진료실을 마련한 한인 의사들의 수가 덩달아 증가하더니 급기야 굿사마리탄 병원의 의사 가운데 세브란스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80여명이나 되기에 이르렀다. 2011년, 세브란스 병원과 굿사마리탄 병원은 점점 더 늘어가는 커뮤니티의 상호협조를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거리는 이역만리 떨어져 있지만 세브란스와 굿사마리탄 두 병원은 각기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최상의 의료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선구적 의료기관으로 발전했다.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설치된 ‘우정과 평화의 종’ 제막식을 통해 두 병원 간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 느낌이다. ‘우정과 평화의 종’은 당시에도 현재에도 굿사마리탄 병원장인 앤드류 리카(Andrew B. Leeka)와 세브란스 동문이자 재미 소아과 의사인 이하성 박사가 공동으로 설치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하성 씨야 한국인이니 종을 설치하자는 제안을 할 만도 하다. 그러나 리카 병원장은 어떤 계기에서 이런 제안을 하게 됐을까.

 

당시 LA 인근에서 발행됐던 《LA 다운타운 뉴스(LA Downtown News)》에 따르면 앤드류 리카 병원장은 18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원의 종들이 전시된 전시장에 와서 종들이 울리는 소리를 즐겨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병원장으로 있는 LA의 굿사마리탄 병원에도 이런 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그 무렵이었다. 합의가 이루어졌고, 뜻을 같이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기금을 추가해 제작됐다. 리카 병원장은 그해 한국에 건너가 녹은 형태의 종을 중간 점검하기도 했었다. 그때 그는 이 종이 완성되어 가장 많은 한국인 동포를 위해 봉사하는 굿사마리탄 병원의 구내에 걸려 있을 날을 구체적으로 마음에 꿈꿨다고 한다. 리카는 “종소리에는 종교적 요소가 있다. 한국 문화에서 종소리는 중요하다. 음파는 갈라지며 무한대로 사라지는 과정에서 하늘에 치유의 기도를 보낸다.”라는 시적인 표현을 개막식 행사에서 하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우정,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의미에서 종을 제작할 때 두 병원의 부지, 그리고 북한에서 흙을 채취해다 섞었다는 연세대 동문회 관계자의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4피트 높이, 770파운드의 무게의 이 종은 사찰 종 제작사인 성종사 유한공사(성종사)의 장인들이 건립한 것이다. 리카 병원장이 8년 전 제막식에서 밝혔듯이 ‘우정과 평화의 종’은 일년 내내 다양한 행사를 위해 울렸었고 앞으로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할 것이다. 한민족 정신 문화의 정점인 범종이 미국 LA 한복판 병원에 걸려 인류 모두의 우정과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면 최근 증가하고 있는 아시안 혐오 범죄라는 기형적 사회현상은 잦아들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된다.


<병원의 정면 오른쪽 녹색부지에 들어선 우정과 평화의 종>

<멀리서 본 범종>


<가까이서 본 범종>

<아름다운 범종의 문양들>

<용 모양으로 장식된 범종의 머리>


통신원이미지

  •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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